① 업무에 학점이 매겨지지 않는다. ② 보스가 명문대 박사가 아닌데도 자기를 가르친다. ③ 거래처 담당자에게 학벌을 내세우는 게
소용이 없다. ④ 월급이 과외 아르바이트 때보다 적다. ⑤ 명문대 출신이 아닌 뛰어난 동료가 존재한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우연히 접한 글이다. 'S대생(서울대생)이 입사 후 받는 충격'이란 제목이다. '충격'이라는 단어가 자극적이긴 하지만
행간의 의미는 명확하다. 일류 대학 졸업장이 평생 출세를 보장하는 '백지수표'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주제를 웃음 코드로 적절히 포장했지만 한꺼풀 벗기면 학벌주의에 대한 냉소가 드러난다. 이 글이 트위터에서 널리 퍼진 것도
그만큼 공감대가 컸던 탓이다. 어쩌면 이 시대 수많은 비명문대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학벌
만능주의를 꼬집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가 있다. 박근희 삼성생명 사장이 지난 6일 모교인 청주대 강연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삼성에서 상업고,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게 걸림돌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스펙'이 아닌 '열정'을 강조했다. 박 사장은
청주상업고(현 대성고)와 청주대 상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그룹에 입사해 4개 계열사 사장을 두루 거쳤다.
'개천에서
용이 난' 사례는 박 사장만이 아니다. 지난 7일 단행된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사장 승진자 6명 가운데 스카이(서울대, 고대,
연대) 출신은 두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경북대, 부산대, 성균관대, 한양대 출신이다. 스펙이 아닌 실력으로 안갯속 글로벌 경영
환경을 헤쳐가겠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였다는 평가다.
스펙보다 실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다. 19일 현대차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6명 승진자 가운데 스카이 출신은 세 명이었다. 부회장단을 보면 이
비중은 더욱 줄어든다. 현대차·기아차 부회장 9명 가운데 비스카이 출신은 5명이다.
최근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인사담당자 10명 중 8명은 스펙과 업무 능력에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업무 능력을 갖추기 위한 자질 1순위로는 '인성ㆍ성실성ㆍ책임감'을 꼽았다.
삼
성전자와 현대차의 사장 부회장단 면면을 보면 이같은 결과가 허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스펙에 얽매이지 않는 인사 시스템은 조직내
경쟁을 견인해 기업 에너지를 극대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한다. 이는 수많은 변수와 맞서야 하는 글로벌 기업에게 생존 조건이다.
스
티브 잡스가 대학을 중퇴했지만 그 누구도 '가방 끈이 짧다'고 비꼬지 않는 것처럼, 미래가 창창한 글로벌 기업이라면 스펙에 집착해
조직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한다. "스펙은 기계에나 있는 것"이라는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의 한 마디가 내내 귓가를 맴도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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